image teller 2017. 1. 19. 17:34

여행을 오면 늘 밤 늦게까지 싸돌아다니곤 한다. 일찍 호텔 들어가서 자려면 비싼 비행기 타고 왜 나온 것이냐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음 날이 힘들다. 하지만, 이번 가족여행은 8박9일의 짧지 않은 일정이고, 술을 못하는 아내와 초등학생 딸과 함께 왔기에 밤늦게 돌아다닐 수가 없다. 또, 도쿄였다면 혼자서라도 억지로 나갔겠지만, 여기는 홋카이도에서도 동쪽 끝에 위치한 쿠시로에서도 30km 더 떨어진 '아칸'이란 곳이다. 마치 유럽 같아서 저녁 7시만 되면 편의점 밖에는 문을 연 곳이 없다. 오후 5시만 되면 호텔로 들어와서 쉬게 되니 다음 날이 가뿐해서 좋다. 더욱이 여기는 온천의 땅, 홋카이도다. 2박3일동안 묵은 타이토 호텔에는 작지만 멋진 온천이 있다. 짙은 호박색의 미끈미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여행의 피로는 말끔히 사라진다. 무엇보다 노천온천, 로텐부로(露天風呂)가 있다. 로텐부로... 이 얼마나 예쁜 어감인가. 


쿠시로에 오기 전 그 유명한 노보리베츠의 다이이치 타키모토칸이란 곳에 묵었다. 100년도 더 된 대형 온천 호텔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요괴들의 온천 호텔. 그런 호텔의 현대판 버전이란 말이다. 크고 화려한만큼 비싸다. 역시 거대한 온천과 거대한 로텐부로가 있지만, 타이토 호텔의 그것에 비하면 운치가 떨어진다. 그리고, 중국 관광객들이 점령해버린 거대 온천은 10분을 편하게 쉴 수 없을만큼 시끄러웠다. 중국사람들이 목욕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됐다. 타이토 호텔의 규모는 다이이치 타키모토칸의 100분의 1이나 될까. 가격도 딱 절반. 물론, 비지니스 호텔에 비해서는 비싼 방값이지만, 자그마치 로텐부로가 있는 곳이니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바로 그런 로텐부로다. 수건에 아이폰을 숨겨 몰래 촬영에 성공했다. 목욕탕을 촬영하는 건 큰 실례임을 잘 안다. 하지만, 이른 시간이었고, 온천에는 아무도 없었다. 타이토 호텔 로텐부로의 정취를 도저히 글로 설명할 수 없었음을 이해해 주시길.



▲분당 400리터의 온천수가 나온다는 타이토 호텔의 로텐부로. 이번 여행 최대의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