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리산 동호숲(2017.8.26~27)
점점 여름을 나기가 힘이 든다. 매년 그해 여름이 제일 더운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유난히 더웠다. 덥다보니 캠핑이고 뭐고 다 귀찮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한 걸 보니 슬슬 밖에서 자도 될 날씨가 된 것 같다. 늘 같이 다니는 친구들과 맥주 마시며 수다나 떨자는데 의기투합해 토요일 오후,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또 동호숲이다.
요즘 동호숲이 텅 비어 있다던데 텅 비어있기는 개뿔, 대형 텐트가 다섯 동이나 설치돼 있다. 제일 좋은 자리에는 대형 스크린까지 설치돼 있고, 초딩들이 바글바글하다. 경험상 밤늦게까지 시끄러울게 뻔할 뻔자다.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하고, 잠시 돌아다녀봤는데 역시 동호숲 만한데가 없다. 결국, 농로 바로 옆, 제일 구석진 자리에 조용히 짱박혀 있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초딩들은 착하게도 밤 10시 쯤 되니 잠잠하다. 몇몇 어른이들이 술에 취해 고성방가, 폭죽까지 터뜨리며 논다. 다행히 새벽 2시 쯤 주위가 고요해진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다. 해가 뜰때까지 고성방가가 이어지는 경우도 여름 텐트촌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쿨러 가득 채워간 맥주와 함께 대구 서남시장에서 포장해 간 명물 족발 大자 뜯으며 남자 셋이서 소근소근 수다를 떨다가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침낭이 애매해서 항공 담요 두 장 챙겨갔는데 잠을 좀 설쳤다. 전체적으로 춥지는 않았지만, 담요 밖으로 다리나 등이 노출될 때마다 찬 기운에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영하 20도 이상에서도 포근함을 선사하는 꽤 비싼 거위털 침낭이 두 개나 있지만, 지금 같은 간절기에 쓸 침낭이 없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3계절용 침낭, 비싸지 않은 걸로 하나 질렀다. 지난 6년동안 부지런히도 질러댔는데 아직도 지를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가을이다. 보들보들한 양털 구름이 파랗고 높은 하늘을 채웠고, 바람은 지리산 깊은 계곡으로부터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를 우리에게 실어 보내줬다. 아직 가슴이 떨리는 나이니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가슴 떨릴 때 떠나자. 다리 떨리면 못떠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