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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잡썰

호구는 되지 말자

image teller 2017. 1. 3. 15:48

예전에 다른 블로그에 카드사의 채무면제유예상품이란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여전히 댓글과 쪽지가 많다. 주거래 카드에 대한 배신감이 컸으리라. 채무면제유예상품이란 혹시라도 사망, 파산으로 카드대금 결제를 못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다. 매달 결제 금액의 일정 비율을 떼가는 것인데 문제는 가입에 동의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도 가입돼 있다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는 2009년에 가입이 돼 있어서 벌써 7년 넘게 매달 조금씩 조금씩 카드사의 배를 불려주고 있었다. 지난 해말,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카드사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결국은 환불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109만 원. 주력으로 사용하는 카드이고, 기간이 7년이 넘은만큼 돈이 꽤 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109만 원이 어딘가. 옛날 어르신들 말씀처럼 땅 파봐라. 109만 원 나오나.

 

환불 받기 까지 사흘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카드든 보험이든 이동통신이든 가입은 일사천리, 원스톱 서비스지만, 해지는 그 반대의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리저리 ARS 전화를 돌려가며 상담원과 연결됐는데 담당 부서로 이관해야 된단다. 그것도 기다리면 사흘안에 담당부서에서 연락을 준다더라. 그런가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왠지 호구가 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7년을 속았는데 어떻게 믿어? 다시 지루한 ARS 전화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상담원과 연결이 됐고,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똑같은 대답이다. 오호~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목소리 톤을 높여서 너희들 못믿겠으니 당장 연결해라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아! 오해는 마시라. 요즘 매스컴을 장식하는 갑질 고객처럼 싸가지없이 전화하지 않았다. 경어를 썼고, 정중하지만 강력하게 요구했다. 로봇처럼 대응하는 상담원을 흔든 내 한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사회생활 처음하면서 부푼 기대를 안고 처음 만든 카드가 너네 카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15년 넘게 애지중지 사용했다. 그런데 이런 뭐같은 상품을 내 동의도 없이 가입을 시킨데 대해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 상담원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면서 믿어달라고 말했다. 그 목소리는 예의바르지만 로봇같은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진심이 느껴졌다. 한번만 더 믿어보겠노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가 오전 11시 반쯤이었을게다. 그리고 그 날 업무시간이 끝나기 전 담당부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조건 죄송하다며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 차례에 나눠 109만 원이 입금됐다. 내가 호구에서 무서운 소비자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호구는 되지 않아야 한다. 뼈빠지게 번 돈인데 그 돈을 쓰면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세금. 나는 대한민국 세금 납부자로써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국가로부터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부러울 때가 그들이 국가기관에 가서 "I'm Tax payer"라고 외치면 문제가 해결이 될 때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의 설정이겠지만, 미국에 꽤 오래 살다 온 선배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는 현실성이 있는 설정이라고 한다. 어쨌든 내 돈 쓰는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하는데 대한민국은 아직 많이 멀었다. 채무면제유예상품처럼 고객을 얼마나 호구로 알면 은근슬쩍 돈 떼먹고 고객이 먼저 알고 난리를 치면 환불해주고, 아니면 슬쩍 묻어가느냐 말이다. 카드사들이 채무면제유예상품으로 번 돈이 9천억 원이 넘는단다. 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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