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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의 기록/play

가을 제주도

image teller 2016. 12. 30. 17:33

이 겨울에 뜬금없이 가을 제주도 얘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9월 말에 하룻밤 머물다온 오름의 추억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라고는 폭포 몇 개 보고, 박물관 몇개 들렀다가 저녁에 흑돼지 구워먹는, 이른바 경로관광 밖에 못가봤는데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오름 캠핑의 호사를 누렸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오름이라서 인터넷 뒤져봐도 정보가 거의 없는 곳인데 재주좋은 친구들이 용케 찾아냈다. 오름에서의 백패킹이 불법이냐 합법이냐,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백패킹이 불법이냐 합법이냐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불법이라고 욕먹어도 할 말은 없지만, 다녀간 흔적없이 깨끗이 치웠고, 자연훼손 행위는 일체 하지 않았으니 걱정 마시라.

 

기가 막히게 예쁜 길을 한참 걸어올라간다. 차도 들어갈 수 있는 길이지만, 멀리 주차해놓고 걷기로 했다. 하룻밤 묵을 장비에 먹을 것 까지 가볍지 않은 배낭이었지만, 고생을 감수할만큼 예쁜 길이다. 정상까지 600미터. 지금까지는 평지였지만, 남은 600미터 중에서 꽤 가파른 경사가 있다. 15분 정도 각오하고 올라가야한다. 정상에 오르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산이 한라산이다. 한라산을 저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다니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다. 바닥은 폭신폭신한 풀이 카페트처럼 깔려 있다. 하룻밤 留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이다. 블랙다이아몬드 아와니는 백패킹용으로는 너무 무겁다. 좀더 가벼운 텐트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던 순간이었다. 마침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때 1kg 미만의 깃털 같이 가벼운 텐트를 아주 저렴하게 손에 넣었다. 기회가 되면 장단점을 분석해 보리라. 어쨌든 세 남자가 하룻밤 묵을 텐트 두 동과 가벼운 살림살이를 오름에 펼쳐 놓았다. 또렷한 석양까지 기대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짓이다. 이 정도의 분위기라도 연출해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해가 지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을 제주도는 진리였다. 

 

오름 위에서 불을 피우는 건 도저히 못할 짓이라 회를 끊어 왔다. PET병에 든 한라산 소주를 한 병 밖에 사오지 않았음을 정말 후회했다. 충동구매한 미니 시에라컵이 정말 요긴하게 쓰였다. 몹쓸 지름신이 수시로 강림하시지만, 아주 가끔 이렇게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소주가 남아 있지 않음을 아쉬워하는 순간, 구름 속에 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한라산에서 몰려온 구름이 우리를 완전히 감싸 버린 것이다. 마치 비라도 내린 듯 모든게 축축해졌지만, 싫지 않은 느낌. 우화이등선의 경지! 

 

다음 날 아침 일출 무렵의 풍경 또한 놀랄만큼 아름다웠다. 경로 관광에서 본 제주가 아닌 바로 제주의 속살. 가을 제주도를 제대로 느끼고 간다. 어딘지 잘 기억해뒀으니 내년 가을 제주의 속살을 몹시도 보고 싶어 하는 아내와 둘이서 살짝 다녀가야겠다.


 

오름으로 가는 길

 

오름 정상.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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