釧路、北海道

10년 만에 쿠시로에 왔다. 2007년 1월에 왔으니 정확히 10년 전이다. 당시 천연기념물인 두루미에 관한 촬영일이 있어서 난생 처음 이 먼 곳까지 와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말 그대로 홀딱 반하고 말았다. 새 중의 새라는 두루미도 두루미지만, 두루미와 공존하고 있는 쿠시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를 안내했던 유리아 모모세씨에게 딸이 크면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10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 때 딸이 4살, 지금 14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흐른 것이다.

쿠시로까지 멀기는 멀다. 대구에서 도쿄, 도쿄에서 하코다테, 하코다테에서 노보리베츠까지. 어제 노보리베츠 온천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오늘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삿포로 신치토세공항까지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고, 공항에서 2시간 넘게 비행기를 기다려서 50인승 소형 비행기, 프로펠러가 두 개 달린 쌍발기를 타고 쿠시로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애초 계획은 노보리베츠에서 기차를 타려고 했는데, 눈 때문에 기찻길이 끊기는 것이 흔한 일이라 안전하게 비행기를 선택했다. 일본 공항의 제설 능력은 가히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올겨울 초 그 제설 능력을 넘어선 눈이 와서 공항이 마비됐는데, 당국의 제설능력을 탓하기보다는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는 기사가 더 많았다. 

쿠시로 공항에서 혼다 하이브리드 렌터카를 빌려 30km 정도를 달려서 타이토 호텔에 도착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도로가 얼어 있어 운전이 조심스럽다. 오른쪽 운전석에 우리와는 반대 차선으로 달리는 것은 꽤 경험이 있어 아무렇지도 않지만, 혹시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시속 50km를 넘기지 않으며 천천히 운전하고 있으려니 현지인들이 익숙하게 내 차를 추월해 간다. 타이토 호텔은 10년 전 차로 지나치면서 봤던 호텔인데 유럽풍의 건물이 너무 예뻤었다. 다음에 오게 되면 꼭 저 호텔에서 묵으리라 다짐했는데 역시 그 다짐이 이뤄졌다. 넓은 설원에 호텔 건물만 있었는데, 지금 와보니 작은 마을이 생겼다. 네비게이션으로 몇 번을 검색해봐도 호텔이 나오지 않아 잠시 당황했었지만, 네비게이션이 틀린게 아니고 주변 풍경이 바뀐 것이었다. 강산도 변하는 10년이 흘렀단 말이다. 작년 12월에 전화로 예약을 했었는데, 어떻게 올 거냐고 묻길래 기차를 탈 예정이라고 하니 오히려 나보다 호텔 측에서 더 걱정을 했다. 1월에 다시 한번 확인전화를 해달라고 몇번씩 당부한다. 1월에 다시 전화를 해서 비행기로 갈 거라고 말하니 역시 나보다 더 안심하는 눈치다. 오늘 도착하니 환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참 따뜻한 호텔이다.

내일은 동이 트기 전 두루미가 잠을 자는 세쯔리가와에 갈 생각이다. 5시쯤 일어나야 한다. 쿠시로 날씨가 생각보다 춥지는 않지만, 새벽에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단단히 챙겨 입고 나가야겠다. 영하 20도에서도 견딘다는 캐나다산 방수 부츠를 신고 왔는데 도쿄에서는 무거워서 힘들었지만, 이제 제 역할을 단단히 해야할 때다. 

▲홋카이도의 거친 자연과 태평양이 보인다. 홋카이도 개척사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증거임과 동시에 원주민인 아이누족에게는 폭력의 역사다.

▲우리를 쿠시로까지 데려다준 전일본공수(ANA) 50인승 쌍발기. 프로펠러 쪽 좌석이라서 떨림이 더 심했다.

▲눈으로 뒤덮힌 도로를 달려 두루미마을(鶴居村)로 가는 길. 10년만이라 너무 설렌다.

▲타이토 호텔. 유럽풍의 아담한 건물. 드론을 가져오길 잘했다. 

▲타이토 호텔